한국영화 최초로 지난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등 세계적인 권위의 영화제에서 각종 상을 휩쓸었던 영화 <기생충>은 2019년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며 한국영화 신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실력파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연기인지 실제인지 착각이 들 정도로 캐릭터에 대한 완벽한 몰입을 통해 긴장감과 공감을 이끌어낸다.
한편 범행 동기가 불분명하거나 상식적이지 않은, 일반적 수사 기법으로는 해결되기 힘든 사건 등에 투입되어 용의자의 성격, 행동유형 등을 분석하고 추정하는 ‘프로파일러’는 직접 범죄자가 되는 수준까지 몰입하여 강력범죄 사건을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언뜻 봐서는 매우 이질적인 두 집단인 ‘배우’와 ‘프로파일러’에게는 완벽한 공통점이 한가지 있다. 바로 특정 인물에 완전히 몰입하고 직접 그 사람이 되어본다는 점이다.
우리 속담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가 생각하는 선입견과 편견, 그를 통해 만들어진 자신만의 세계관이 존재한다. 즉,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기본으로 디자인되어있는 인간에게 있어 타인이 되어보는 작업은 그만큼 그 어떤 일보다 어려운 것이다. 아무나 천만 관객의 배우가 될 수 없고, 프로파일러같은 전문가가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이 같은 상황은 기업 활동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황 속에서도 어떤 제품은 돌풍에 날개 단 듯이 판매되고 어떤 제품은 언제 출시됐는지도 모르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곤 한다. 이 차이는 얼마만큼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주고, 문제를 해결해주고, 기쁘게 해주었는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배우’와 ‘프로파일러’를 통해 무언가 힌트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대본이나 상황을 접하자마자 바로 해당 인물의 감정을 느끼고 몰입할 수 있는 ‘빙의’ 수준의 천재성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면 조사와 분석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사하고 분석하면 현재 상황이 파악되고, 아이디어와 틈새가 발견되기 마련이다. 마케팅에서도 조사, 분석 작업을 선행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조사나 분석은 사람들이 어떤 것을 갈망하거나, 두려워하는지 알아보고 궁극적으로 상대방을 이해하는 작업이다. 간혹 조사나 분석과 같은 전문적인 용어를 듣게 되면 괜히 어려운 일이고, 마치 전문 기관에서나 하는 일이라 생각되면서 지레 겁먹거나 피하려고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쩌면 인터넷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많은 마케팅 이론에 등장하는 전문용어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지우는 것부터가 시작인 셈이다.
사람 행동과 사고는 대부분은 무의식에서 비롯된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좋아하고,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사게 되고, 나도 모르게 나오는 습관들을 무의식이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 사람 행동의 95% 이상이 무의식이라는 것은 이미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사실이다. 이와 관련된 책들 중에서 이케가야 유지 박사의 『단순한 뇌, 복잡한 뇌』에서는 좋아하는 가수나 노래 역시 우리가 접하게 되는 즐거운 경험 속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좋은 인상으로 남았기 때문에 다음에 그 노래를 듣는 순간 ‘오, 좋네’하고 느끼게 되는 것이라 설명한다. 무의식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리 인간에게서 물어보는 방식으로 답을 구하는 것은 대개 그럴듯한 만들어진 답변일 뿐이다. 스티브 잡스가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모른다. 따라서 시장 조사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라고 말한 일화는 아마도 그는 이미 사람들의 본성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관찰을 통해 찾아야 하는 것은 ‘결핍’
야후(YAHOO)가 주름잡고 있었던 인터넷 시장에 불필요한 정보로 시간을 뺏기고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결핍을 해결한 것이 구글(Google)이었고, 김치를 땅속에 묻어 제대로 된 맛을 느끼고 싶은 한국인의 결핍을 해결한 것이 김치 냉장고다. 결핍은 무언가 없거나 부족한 상태를 말한다. 결핍의 다른 말은 ‘욕구’이자 ‘틈새’이다. 즉, 우리가 관찰을 통해 찾아야 하는 것은 바로 결핍인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한다. 의외로 타인이 나를 더 잘 아는 경우도 많다. 중요한 점은 자신도 모르던 결핍을 찾아 해결해주고 만족을 주게 되는 제품에 사람들이 열광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저 행동을 살피는 것
관찰은 의도를 가지고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야 가능한 활동이다. 사람들이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불만, 불편, 부족, 불쾌, 불안, 불신을 발견하고 진정 원하는 것을 알아내는 방법은 물어보지 말고 가만히 무의식적인 행동을 지켜보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했건, 어떻게 느끼건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제 어떤 행동을 했느냐가 핵심 포인트이다.
관찰에 이은 또 하나의 방법은 ‘체험’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인학자이자 산업 디자이너인 미국의 패트리샤 무어(Patricia Moore)는 26세이던 1979년부터 1982년까지 3년간 80대 노인으로 변장하고 생활하며 노인들이 겪는 불편함을 몸소 체험하면서 각종 유니버설 디자인을 창조해낸 인물이다.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은 제품, 시설, 서비스 등을 이용하는 사람이 성별, 나이, 장애, 언어 등으로 인해 제약을 받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패트리샤 무어는 이를 통해 유니버설 디자인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기업인 주방용품 제조 회사 옥소(OXO)의 굿 그립, 제너럴 일렉트로닉(GE), 존슨 앤 존슨, 킴벌리 클라크 등의 많은 제품 디자인에 노인의 신체 특성을 녹여냈다. 우리나라에서도 배우 ‘안내상’은 몇몇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노숙자 역할을 연기하기 위해 실제 3개월간 노숙 생활을 했다는 에피소드를 공개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여기서 말하는 ‘체험’은 말 그대로 직접 상대방이 되어보는 것이다. 체험을 통해 공감하고, 진심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직접 고객이 되어 우리 제품이나 서비스의 구매 경로를 따라가 보기도 하고, 경쟁사의 제품을 구매해보기도 하면서 기꺼이 돈을 쓸만한 가치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제품을 직접 구매하거나 받아보았을 때의 느낌은 어떠한지, 어떤 불편함과 불만족이 있는지, 내가 한 행동 중에 특별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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